예술.

미술전공자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어릴때부터 그림에 재능이 있었고(과거형)

사물의 본질이나 의미보다는 그 동작원리나 보여지는 모습(look)에 유독 관심을 가진 유년을 보냈다.

디자인과를 선택했던것도 사실 곰곰히 따져보면, 그림도 적당히 괜찮고 성적도 적당한데 심지어 그림질로 돈(취업)도 벌수 있는 훌륭한 직업이 있대서 막연하게 ‘디자이너’를 동경했던것 같다.

한편, 10대 시절 미술학원에서 만나게되는 수 많은 미대입시생들 중 순수계열 지원자들을 보면서 ‘나보다 그림도 못그리면서 쟤네들은 나중에 뭐해서 벌어먹으려고 순수를 지원할까? 집이 엄청 잘사나?’  이런 의문을 떠올렸는데 돌이켜보면 어릴때부터 난 사고방식이 참 세속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의 내면을 더 곰곰히 들여다보니 난 기계나 조소등에 더 관심이 많았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는데. 제한된 영역안에서 깔끔한 점선면으로 시각적 아름다움을 그려내는것 보다는, 실제하는 사물을 만들어내는게 더 자신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지만 피컴에 미쳐있었던 이유이기도 하고. 아무튼 지금도 새로나왔다는 Typo나 GUI를 보면 하품만 나오는데 주변에 가구나 제품하는 애들을 보면서 나도 저정도는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중2 근자감)이 생기는걸 보면 천상 난 visual 디자이너는 아니구나 라는걸 깨닫는다.

이번에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을 들렸는데, 내 또래 신진작가들도 이런 스케일있는곳에 전시됨을 보며 시간이 많이 흘렀구나, 난 쥐뿔도 없는데 여태 헛산거 아닌가 생각도 들고.. 자기자리에서 창작욕을 불태우며 나아가는 작가들을 보니, 재무제표나 전환사채발행이나 보고있는 요즘의 나와 대조돼서 참 세상사 알다가도 모를일이란 생각이 든다.

anyway, 아래는 눈에 띄던 두 전시 사진. 뉴욕에서 몇번 봤던 최우람씨 작품한진해운 박스 프로젝트 서도호씨 작품. 한복에 쓰이는 천을 사용했다고.

 

 

 

 

한홍구 선생의 글 / 역사와 책임 중에서

이 땅에서 진짜 사라진 것은 양심적이고 합리적인 우익이었다. 우익이라면 당연히 민족을 내세워야 하는데 이 땅의 자칭 우익들은 3·1절에도 성조기 들고 나오는 부류들이다. 내가 여러 번 강조하는 바이지만, 한국의 진보는 원래 진짜 보수였다.

 
극우파 김구의 수행비서였던 장준하는 김구가 남북협상에 나서자 공산주의자와 무슨 협상이냐며 광복군 참모장 이범석과 함께 떨어져 나왔고, 이승만 정권의 국무총리가 된 이범석이 직책상 당연히 좌익 전향자들을 포용하는 태도를 보이자 좌익들에게 관대하다며 이범석과도 갈라선 강골 극우파였다. 신의주 반공학생 의거의 사상적 배후 함석헌, 좌우대립이 극심했던 시절 우익 정도가 아니라 아예 미군장교였던 문익환과 박형규, 반탁학련이란 극우파 학생조직의 행동대장이었던 계훈제, 7년간 국군장교로 복무한 리영희, 반공포로 김수영, 유학생의 열에 아홉이 미국에 잔류하던 시절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납북당한 것을 잊지 않고 군에 복무하기 위해 유학을 중단하고 돌아온 백낙청 등등은 어느 모로 보나 보수의 가치를 충실히 지킨 양심적인 인물들이었다. 일제의 주구들이 우파요, 애국자를 자처한 험한 시대에 까마귀 노는 물을 피한 백로들이 시간이 흐르며 진보가 되었다.

 
이승만 같은 자들이 선장을 하고, 김창룡, 원용덕, 노덕술, 박종표, 이근안 같은 자들이 선원질을 한 대한민국호가 침몰하지 않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미국이 와서 구해준 덕분일까? 서울을 버리고 도망간 선조에게는 자기가 의주까지 가서 불러온 명나라 군대가 나라를 구해준 것이어야만 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순신이 있었고, 나라의 녹을 먹은 적이 없으면서도 분연히 떨쳐 일어난 의병장들이 있었다. 장수만 있어서 어찌 의병전쟁이 되겠는가. 역사가 그 이름을 불러주지 못한 수많은 의병들이 이 나라를 지켰고, 다시 세웠다.

 
전두환의 계엄군이 다시 광주로 쳐들어온 5월27일 새벽, 도청에는 시민군이 300명이나 남아 죽음을 기다렸다. 5월26일 밤 “나는 도청에 남을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정직하게 자신에게 던지는 사람들이 바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간직한 사람들이었고, 이들은 누구나 광주의 자식이 되어 온몸으로 새로운 역사를 써나갔다.

 
우리가 믿을 것은 우리 자신에 내재한 이 복원력밖에 없다. 더 이상 대한민국호를 책임지지 않는 자들, 위기의 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자들에게 맡겨둘 수 없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간직한 이들이 움직여야 한다. 역사는 책임지는 사람들의 것이다.


 

-명문이다. 하지만 이 글의 가장 큰 문제는 이 글속의 비판대상이 애초에 이 글을 해독할 능력이 없다는 점.

블루바틀 예가체프

 

우연히 한 두달정도 묵혀둔 블루바틀 예가체프(Blue bottle Coffee - Yirgacheffe)를 잊고있다가 마셔봤는데, 오히려 로스팅한지 일주일 안된것보다 나았다. 밀봉된 공간이기도 했고 natural dry process라 온도나 습도 영향을 좀 덜 받지 않았을까 짐작은 하지만 향이 더 풍부해진건 참 신기한 노릇(현재 블루바틀엔 water washed로 판매중)
간혹 geisha 같은경우 의도적으로 공기에 노출해서 산도를 높혀먹기도 하는데 별로 내 취향은 아니었다. 해서 2개월 넘게 방치된 커피라 버리기도 아깝고 대충 에스프레소 블랜드랑 섞어마실까 하다가 drip해보곤 삭은커피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해봄.

요즘 보는 웹툰들.

  • 곱게 자란 자식

    사실 처음 보는 작가인데, 작화수준이 상당하다. 인제 한국 웹툰 시장도 충분히 무르익으니 초기의 그림 못그리는 허접한 작가들말고 단행본 수준의 고퀄작가들이 많아져서 무척 흡족하다. 조금 아쉬운 부분에 대해 사족을 달자면, 소재의 특성상 ‘일본놈=나쁜놈’ 의 구도는 필연적일 테지만,  당시의 증언이나 비슷한 수준의 ‘악행’을 증빙할만한 역사적인 소스를 첨부해서 보여주는게 좋지 않을까 싶다. 단지 ‘이렇게 잔인무도한 놈들이었어’에 그친다면 작가의 상상력에만 의존한 단순 반일만화라고 치부되지 않을까. 친일파가 기득보수인 작금의 현실을 고려하면 내 생각이 단순한 기우는 아닐테다.
  • 아네미아

    이 만화 걸작될 가능성 있어보인다. 호흡을 얼마만큼 길게 갈것인지.. 좀 길어지면 작가의 역량이 나타나겠지만, 현재까지는 뎃생력도 탄탄해보이고 작화스타일이나 주제도 남+녀 팬들을 동시충족 시킬만해서 장기 롱런가능성 있어보인다. 사실 선이 흐리멍텅한 작화를 그닥 좋아하진 않는데, 요즘은 다들 테블릿으로 그려 그런지 이분이 종이나 펜으로 하면 훨씬 그림빨이 살것같은 예감이.. 암튼 잼있게 보고있는데 업뎃이 좀 느리네.
  • 파인


    명불허전 윤태호 작가님의 최신작. 초반인데 벌써 캐릭터부터 간지가 줄줄 흐른다. 이건 그냥 닥치고 계속 지켜볼 예정.
  • 덴마 (naver는 외부img링크를 차단하네..흥)
    휴재중인 덴마에 대해 짧게 감상을 적자면, 양형은 이번에 정말 제대로 방향을 잡은것 같다. 주로 짧은 에피소드 위주의 스토리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던 사람이라. 플루타크라거나 상대적으로 호흡이 긴 작품들을 그릴땐 항상 뭔가 마무리가 어색했는데. 이번엔 세계관에서나 스토리, 캐릭터들의 수준이 가히 FFS나 은영전에 근접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은빠들 반사) 양작가님도 인제는 국보급 작가의 반열에 올려도 되지 않을까.

차이 #2. 똑같은 패션

하긴 첨에 뉴욕왔을때 후줄근한 뉴요커들의 의상을 보고 실망을 넘어 경악했던 나를 기억한다. 일부 hip한 지역의 패셔니스타들 말고는 거의 거지꼴이 70%. (남은 소수의 패셔니스타들이 전세계의 트랜드를 좌지우지하는 현실은 아이러니)

하지만 몇년 살다 보니 한국 관광객이나 유학생들 패션이 뭔가 좀 작위적이고 어색해보이기 시작했다.
내 패션취향이 뉴욕의 영향으로 업그레이드 됐다고 은연중 자찬하려는게 아니라, 수많은 인종과 다양성의 아이콘인 뉴욕에서 한국인만의 일률적 패션은 단연 두드러진 이질감을 선사해준다. (일본인, 대만인도 마찬가지..아시안의 공동체 의식이 발현한 것일지도)

한국의 거리를 요 2개월간 눈여겨 보니 올 여름엔 흰색 버켄스탁 신고다니고 남자들은 하나같이 귀두 투블럭컷에 흰색남방 + 검은바지가 유행인거 같다. 나 자신도 10년전엔 샤기컷에 왁스 떡칠하고 다녔지만, 하나같이 유행에 맞혀 유니폼 입듯이 꾸민 모습이 왜 이리 어색해 보이는지 모를일이다. (그러면서 현재 나의 머리는 홍대의 섹쉬한 헤어디자이너 언니에 의해 투블럭컷..;;) 당연한 얘기지만 인간의 가치관이나 심미안의 형성에 있어 생활습관이나 환경의 영향은 절대적인것 아닌가.

유행을 따르는 문화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남보다 뒤쳐지면 손해를 보는 사회현상의 연장선이라 생각된다. 유행을 따라야 세련된 사람이 되고, 명품백 하나정도는 들어줘야 ‘나 이쯤 산다’ 는걸 보여주는 #1의 현상과 동일한 이유일 것이다.

경복궁 북촌

 

사실 북촌 가본건 처음..;;

경복궁도 표사고 입장해서 제대로 구경해본것도 처음..;

전에 한국살땐 항상 차를 몰고 다녔으니, 근처 갈일도 없었지만..

어릴땐 왜 난 한국전통문화가 싫었을까. 왠지 뭔가 촌스러워보이고 정적이고..

인제 내가 좀 촌스러워 진 이유인건지, 타국생활을 오래해서 그런지

한옥, 전통패턴이 오히려 쉬크해보이고 한국역사에도 끊임없이 관심이 생긴다.

이번에 구경할땐 북촌에 한옥짓고 살고싶단 생각까지 들던데…늙은게지..흙..

 

 

한국인과 뉴요커의 차이.

제목이 ‘한국인과 미국인의 차이’ 가 아닌것은 7년의 짧은 내 미국 생활이 뉴욕 맨하탄에 한정돼있기 때문이다. 타주 출신의 미국인들도 많이 접했지만 그래도 살아본건 아니니까.

여러 사정상 한국에 벌써 2개월가량 머무르고 있는데. (돌아갈지, 남을지 아직도 명확히 결정된 바 없음)

20대를 끝으로 한국을 떠난 뒤 지금까지 30대를 뉴욕에서만 보내고 온 입장에서 한국에서의 지난 2개월은 Americanized된 내 일부를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1. 웃지않는 사람들.

생면부지의 사람과 길에서, 또는 식당의 옆자리에서 eye-contact이 일어나면 멋적은 썩소라도 지어주는게 미국의 삶이다.

상대적으로 다른 state보다 무례하다고 평가받는 뉴요커와 비교해도, 한국인들의 굳은 표정과 눈빛은 사뭇 살기에 가깝다.

그 이유를 좀 골똘히 생각해 봤더니, 사회깊이 뿌리박힌 경쟁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일제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적자생존을 위한 투쟁. 남들보다 ‘강해보여야’하고 돈이든 빽이든 ‘있어보여야’하는 사회. 약해보이거나 무시당하면 생존할 수 없는 팍팍한 삶을 그대로 반영하는게 아닐까.

거친 남성문화가 주류인 부산에서 유년기를 보낸 내가 ‘센척’해야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이득에 대해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다. 미소를 지으면 선생님들로 부터 왜 비실비실 쪼개냐는 꾸중을 듣는게 중학교 시절 흔한 기억이었으니까. (아 ㅅㅂ 꼰대들 얼굴 떠오른다)

최소한 내가 살던 지역이나 사회에서는, 모르는 타인 앞에서의 굳은 표정은 강한모습으로 치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장려되곤 했다.

선배나 연장자 앞에서 ‘웃음’은 곧 상대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는 군대문화도 일조하는것 같고.  이정도 살만하면 인제 얼굴 좀 펴고 센척보다는 유화적인 제스쳐좀 보일 때 되지 않았나. 캄보디아나 베트남의 거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웃음이 왜 한국에는 없을까.

스타트업과 NDA

몇일 전 전직장에서 함께 일하던 직장상사가 또다시 startup을 같이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이메일로 제의를 해왔다.

자기 아이디어를 들려줄테니 MNDA(Mutual Non-discloser Agreement, 상호 기밀유지협약서)를 작성해달라고 파일까지 첨부해서…

곧바로 난 “아이디어는 startup의 무척 쉬운 부분중 하나일 뿐이고, 엄청난 횟수의 전략 수정과 UX, 탄탄한 벡엔드, 그 밖의 겁나많은 잡일을 처리해야만 스타트업의 성공이 가능하다. 즉 1%의 아이디어와 99%실행이 중요하다. 아이디어를 들어본 뒤에 NDA든 뭐든 그때가서 작성해준다.” 고 하고 이 링크 2개와 함께( link1 /  link2) 답장을 보냈다.

바로 돌아온 것은  “갈켜줘서 고맙네.. 근데 너 배울게 더 많아보이니 언제든 전화해” 라며 빈정거리는 영국인 특유의 씨니컬한 답장ㅋㅋ.

유독 많이 배우고 똑똑한 사람들 중에 (저 사람 또한 MIT cs연구원 출신) 자기 아이디어가 너무 소중하고 대단해서, 누가 분명 훔쳐가거나 아님 개발만하면 대박날거란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요즘같이 스탓업이 넘쳐나는 세상에 누가 idea하나만 달랑 던져주면서 nda를 작성해주나. 그게 설령 next-facebook 이라 할지언정 프로토타입 수준의 제품은 나와야 투자자라도 찾아가지.. 어이 상실..

예전에 한번 다툰뒤 힘들게 다시 회복한 인간관계라 무척 조심스럽지만, 참 이 사람 안변한다. 아니, ego가 안변하는걸지도.. 어차피 누가 듣는다고 그렇게 쉽게 카피될 아이디어라면 이미 실패할 사업이라는게 내 생각이다.

시제품도 없으면서 patent따위에 돈 퍼붓고 nda 쓰고 하는 스타트업들 중에 성공했거나, 또는 누가 카피한걸 그걸로 방어해서 돈벌었다는 얘기 한번도 못들어봤다. 진짜 궁금한데, 누가 있으면 링크좀 알려주세요.

History Boys,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ebook으로 나왔다길래 바로 구매해 읽던 중.

역사는 왜 공부할까? 라는 챕터의 시작부분에 영화 History Boys 의 대사가 인용됐다.
아래는 원문.

Tom Irwin: Um, Rudge…
Mrs. Lintott: Now. How do you define history Mr. Rudge?
Rudge: Can I speak freely, Miss? Without being hit?
Mrs. Lintott: I will protect you.
Rudge: How do I define history? It’s just one fuckin’ thing after another.

완전 공감 ㅋ.